Man and Microbes: Disease and Plagues in History and Modern Times
Excerpts
최초의 질병
p33 질병은 더 이상 한 종이 다른 종을 못살게 구는 생물학적인 강도짓이 아니다. 오히려 감염은 고전적인 사건, 즉 생명의 근본 현상이며 그것은 평화로운 공존을 향해 나아가는 경향을 띤다는 것이다.
…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모든 생명체는 어느 정도는 다른 생명체를 이용하면서 살아간다. …
이 보편적인 법칙 Eat or Be eaten은 언듯 보기에 AlfredTennyson의 이빨과 발톱의 유혈 낭자한 자연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자연이 늘 잔혹하지만은 않다. 살육과 기생은 자체의 한계가 있다. … 치명적이거나 심한 질병은 대개 숙주와 기생생물이 상대적으로 새롭게 만났다는 징후이다. 즉 그 기생생물은 최근까지 다른 숙주 내에서 삶을 꾸려왔다는 뜻이다.
p43 육류는 ‘시간’을 의미한다. … 육식 동물은 단백질이 농축된 식이 덕분에 며칠에 한 번만 먹으면 된다. 초기 인류는 큰 두뇌와 손재주 및 육류로 생긴 잉여 시간을 통해 먹이를 더 많이 잡거나 또는 다른 목적으로도 쓸 수 있는 도구를 만들었다. … 즉, 문화를 창조할 여유가 생긴 것이다.
혁명과 재앙
p61 농업과 더불어 일년 내내 안정적인 식량 공급이 가능하게 되었지만, 동시에 영양 결핍도 흔하게 되었다. 포만감이 건강한 신체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전분류에 대한 의존은 매우 파괴적인 결과를 낳았다. … 오늘날에도 가난한 나라들 및 부유한 국가의 빈민들에게서도 나타나는데, 칼로리는 충분하지만 다른 영양소가 부족하다.
… 신석시 시대 대부분의 세계에서 기대 수명은 수렵채집인의 40대에서 30대로 떨어졌다.
전염병은 영양 상태가 불량한 사람들이 생겨나기를 기다린다. … 그들의 배설물, 쓰레기, 곡물 창고는 여러 동물들을 끌어들였고, 게다가 수백 종의 낯선 기생생물을 지닌 많은 동물 종을 가축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 그 모든 일의 결과는 생물학적 재앙의 도가니였다.
최초의 동물 친구는 사냥꾼의 움막 주위를 어슬렁대던 늑대와 재칼의 후손인 개였다. KonradLorentz의 주장에 의하면 최초의 가축화는 아마도 한 어린 소녀가 어미 잃은 강아지를 움막에 데리고 와서 구워먹지 말자고 어른들을 설득했을 때 일어났을 것이다. 아주 사회적인 동물인 재칼과 늑대는 쉽게 인간과 유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 농민으로서 그들은 소화하기에 너무나 많은 것을 물어뜯었다. 이제는 인간에게 수백 종의 기생충이 있는데 대부분은 낯선 것이다. 즉 대부분이 사냥감과 가축으로부터 얻은, JFASprent의 용어로는 SouvenirSpecies들이다.
p66 농업은 인간에게 너무도 많은 새로운 병원균을 가져다주어서 인류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p68 식량을 증산하고 그 품목을 다양화하려는 우리 조상들의 노력은 매 단계마다 신기한 전염병을 불러들였다. 신석기 시대 농민들은 경작, 목축, 벌목을 하면서 모기부터 원숭이까지, 전에는 우연히 지나가다가 마주치던 다양한 동물들과 만나게 되었다.
… 그런 변화로부터 가장 호사하게 된 생물 중에는 곤충, 특히 모기가 있다.
도시의 영광과 오욕
… 그 발생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도시는 전염병의 온상이었다. 사실 마을이 큰 도시가 되고서야 대규모 죽음이 인간사의 일상적인 부분이 되었다.
수백만 년 동안 인간의 주요 사망 원인은 사고와 부상이었다. 그러다가 영구적인 농경과 촌락 생활 덕분에 질병으로 인한 죽음이 더욱 흔하게 되었다.
작가들은 종종 Crowd disease를 불로, 인간 숙주를 연료로 보는 은유를 사용한다.
… Alfred Crosby의 표현을 빌리면, 수렵채집인과 비교해 볼 때 그들은 억만장자였다.
그러나 억만장자라 하더라도 그들 대다수는 건강하지도 장수하지도 않았다. 농업 혁명의 초기에서처럼 건강은 기술이 진보할수록 후퇴하는 경향이 있었다. …
빽빽하고 환기가 잘 되지 않던 고대 도시들은 홍역부터 볼거리, 결핵에 이르는 질병들의 에덴 동산이었다. 모든 인구 밀집성 질병 가운데 가장 흔한 감기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수백 종의 서로 다른 바이러스들이 일으키는 ‘감기들’이다 ) 는 공기 전염 방식을 통해 전파된다. 사람과 말만이 감기에 걸리기 때문에 이 바이러스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4,000-5,000년쯤 전 가축화된 말로부터 사람들에게 옮겨온, 모든 감기 바이러스의 ‘증조할머니’로부터 내려왔을 것이다.
수두를 제외한 모든 급성 발진성 질환은 대도시와 그곳의 밀집된 인간 집단에서 발생했다. … 홍역과 두창은 역사적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그것들은 제국주의의 생물학적 무기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또다른 발진성 질환인 ‘아테네 역병’은 페리클레스 의 황금 시대에 아테네를 파괴했기 때문에 역사가들의 이목을 끌었다. … 투키디데스는 만약 언젠가 이 병이 다시 공격한다면 후대인들이 알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서 통한에 찬 기록을 남겼다.
페리클레스가 죽었고, 4,000명의 군인들 중 4분의 1이상이 죽었다. 이 최악의 역병은 2년 동안 계속되었고 3년 이상을 더 머물러 이었닸. 그때까지 아테네 인구의 3분의 1정도가 죽었다.
인간이 다른 군집 생물들처럼 인구 폭발에 대처했기 때문에 질병은 꾸준히 퍼져나갔다. … 모든 곳에서 모험심에 찬 유목 무리들과 군대는 그들이 점령한 땅에서 새로운 질병과 마추졌고, 종족 단위의 인구 집단은 자신들이 점령한 도시에서 전염병의 희생자가 되었다. 미생물의 관점에서는 서로 싸우는 양쪽 모두가 신선한 먹이감이었다.
바로 그 역병, 페스트!
도덕적 설명은 범유행의 시대 초기에 등장하였다. 이것은 역병이 기독교에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의해 고무되었다. 이 새로운 신앙은 현세계에서의 안락함과 삶에 대한 위안 그리고 더 나은 세상에서의 부활에 대한 희망들을 통해 2세기에 로마 세계를 휩쓴 전염병으로부터 이득을 얻었다. …
… 그러나 로마 제국의 멸망은 과식이나 관능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구 과잉과 생태 변화에 따른 자연의 반응에 의한 것이었다.
… 생태학적 관점은 Edward Gibbon과 동시대인인 Thomas Malthus에 기원을 두고 있다. 1798년 성직자이자 경제학자인 그는 인구학의 고전인 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을 썼다. …
… 그는 인류가 인구 증가와 재앙의 쳇바퀴를 벗어날 수 있다는 데에 의심을 품었다. … 그는 스스로 40세가 되어서야 결혼함으로써 본보기를 보였다. … 맬서스는 … 맬서스주의자들의 아버지가 되었는데, … 근대의 인구 억제 운동과 Zero Population Growth그룹 같은 집단이 생겨났다.
자연은 종종 대량 몰살로 심한 개체수 위기를 모면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전염성 질병을 통해서이다.
2000년 동안 말라리아는, 모기들이 번식할 수 있는 인간의 밀집지, 새로운 요새와 정착지, 가축 우리, 그리고 수원지가 있는 유럽 어디에서나 번성하였다. … 이 병은 … 로마의 몰락을 재촉했을 것이다. 79년 말라리아 대유행의 결과로, 로마의 곡창지대였던 비옥한 땅 캄파그나는 너무나 황폐해져서 밭은 경작되지 않았고 마을은 텅 비었다. … 이곳의 말라리아는 1930년 이후에나 박멸되었다.
… 오로시우스의 역병은 125년 로마에 출현했다. … 아마도 홍역이었을 이 역병도 대단히 무서웠지만, 안토니우스의 역병이 시작되었을 때의 공포에 비하면 단지 전조에 불과하였다. 그 병의 등장은 아시아로부터 유럽에 최초로 새로운 역병이 도래하였음을 뜻했다.
… 164년 로마의 한 군대가 지방의 소요를 진압하기 위해 시리아로 파견되었다. … 이것은 제국의 모든 지역으로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이 역병은 14년 동안이나 창궐하면서 이탈리아 인구의 4분의 1 내지 3분의 1, 그리고 유럽 전역에서 400-700만 명의 사람들을 죽였다. 최후의 희생자 가운데 한 사람은 MarcusAurelius 황제였는데, 그는 180년 비엔나에서 이 병 (안토니우스의 역병)에 걸려 죽었다. …
이 역병은 기록한 의사의 이름을 따 갈레노스의 역병이라고도 불린다. … 갈레노스의 기록을 읽은 라제스는 이미 잘 알고 있는 질병인 두창에 대한 묘사라고 느꼈다. …
심하긴 했지만 안토니우스의 역병은 로마 최후의 또는 최악의 역병은 아니었다. …
2세기부터 5세기까지 기근, 이주, 전쟁, 역병은 음산하게 빙빙 돌며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군인, 상인, 떠돌이 부족은 엄청난 사망률을 자랑하는 새로운 질병을 꾸준히 유럽에 들여왔다. …
마침내 버려진 촌락과 쇠락한 도시가 유럽의 정경이 되었다. …
로마를 침범한 자들도 마찬가지로 고생했다는 사실은 별로 위안이 되지 못했다. … 어쨌든 로마의 승리는 실질적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인 것이 되었다. 이 도시는 곧 겨우 수천 명의 사람들이 사는 폐허로 몰락해 버렸다.
4세기에 로마 제국은 각각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에 수도를 둔 두 개의 제국으로 분리되었다. … 542년 그 (유스티니아누스)는 북아프리카, 시칠리아, 에스파냐의 일부를 되찾았고 더 전진할 자세를 갖추었다. 그때 바로 그 역병이 몰아 닥쳤다.
<역병 plague>이라는 단어는 어떤 종류든 심한 유행병에 대해 쓰이지만, 콘스탄티노플을 강타한 것은 “a plague”가 아닌 “The plague”이었고, 그것은 나중에 Black Death이라 불리게 된 페스트였다. … 그것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대학살 중 하나를 일으켰다.
… 이 역병이 종식되었을 때, 이 도시 인구의 40%가 사망하였다.
이 역병의 범유행은 로마계 영국인들을 쇠락하게 만들었고, 색슨족의 침략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였다. 발칸 반도와 중동 지역도 유럽만큼이나 피해를 입었다. … 아마도 부분적으로는 이 범유행으로 인해 많은 아시아인들이, 이 역병의 혼란 속에서 유럽인들이 기독교에 귀의한 것처럼 불교신자가 되었을 것이다.
선페스트는 막대기처럼 생긴 Yersinia Pestis에 의해 발병한다. 이 명칭은 그것을 발견한 스위스의 개성적인 과학자 Alexander Yersin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나병과 결핵, 그리고 다시 페스트
많은 사람들은 중세를 더럽고 질병이 만연한 어두운 구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이 시기는 그전이나 후보다 훨씬 건강하고 덜 폭력적인 시대였다. 세계 인구의 상당 부분을 앗아갔던 선페스트는 8세기에 완전히 사라졌다. … 서기 1000년까지의 ‘암흑시대’는 인간과 대지에 절실히 필요했던 휴식을 주었다.
나병과 결핵은 매우 다르게 보이지만, 사실 그 병원균들은 매우 가까운 친척 사이이다. 그것들은 MycoBacterium이라 불리는 일단의 가느다란 막대 모양의 미생물 집단에 속하는데, 이것들은 수억 년 동안이나 독립생활 세균이었다. …
… 나병의 근원은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지만 어떤 과학자들은 생쥐에 기생했던 Mycobacterium Leprae의 조상이 돌연변이를 일으킨 결과로 생겼다고 생각한다. 영국의 과학자 Richard Fiennes는 인간이 아시아 물소의 가죽을 사용한 뒤로 나병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
나병은 다른 어떤 병과도 닮지 않았다. 그것은 인간에게 독특하게 적응해서 자연적으로는 사람에서만 발생한다. … 나병은 사람들에게 전염의 공포를 유발하지만 아마 가장 전염되기 어려운 질병일 것이다. ....
… 나병과 같이 특별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병은 어디에도 없다. 나환자들은 공포와 혐오의 대상으로서 살해당하거나 추방당했으며, 또한 두건을 쓰거나 뱃지를 달고 다른 사람에게 경고를 하기 위해 방울을 울리고 다녀야 했다. 이러한 낙인을 지우기 위해 학자들은 그 원인균을 발견한 노르웨이 의사의 이름을 따서 나병을 Hansens Disease으로 개명하였다. 이 병을 치료할 수 있게 된 지금도 의학은 그 오래된 이름, 그리고 거기에 수반되는 사악한 분위기를 완전히 몰아내지는 못했다.
암흑 시대가 끝날 무렵, 나병은 더욱 흔해져서 … 영국과 스웨덴까지 퍼졌다. 이 무렵 <라자루스의 집(StLazarus는 나환자의 수호자로 여겨졌다)>이라 불리는 특별한 병원이 사회로부터 나환자들을 격리하기 위해 세워졌다. … 13세기 유럽에는 수천 개의 라자루스의 집이 세워졌는데 영국에만 200개가 있었다. 언제나 나병은 신의 천형 또는 도덕적 타락에 따르는 저주로 간주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