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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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Peter Kivy
url: "https://www.amazon.com/Music-Alone-Philosophical-Reflections-Experience/dp/0801499607"

Excerpts

Beethoven의 교향곡 5번이 인류의 귀에 깊은 인상을 남겨준 가장 숭고한 소음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인정될 것이다. 이 곡은 모든 방식과 조건을 만족시킨다. 당신이 문트 부인처럼 가락이 흘러나올 때(물론 다른 이들을 방해하지는 않을 정도로) 조용히 박자를 두드리든지, 헬렌처럼 음악의 격동 속에서 영웅과 난파선을 발견하든지, 마거릿처럼 단지 음악을 볼 뿐이든지, 티비처럼 대위법에 정통해서 무릎 위에 오케스트라 악보를 펼쳐놓든지 간에… –포스터, HowardsEnds

왜 음악인가

어떤 음악인가

자극 모델

헬렌의 방식

마거릿의 방식, 티비의 방식

음악일 뿐, 그렇다면 무엇을 이해할 것인가

표층과 심층

음악은 어떻게 감동을 주는가

정서 듣기

음악의 심오함

지금까지 나는 음악적 ‘순수주의’로 여겨질 만한 주장의 한 형태를 제시했다. 대략적으로 말해 그것은 순수 기악 음악, 즉 내가 ‘MusicAlone’이라고 부르는 음악이 오로지 음악적 용어로만 이해될 수 있는 소리의 유사구문론적 구조이고 어떤 의미론적, 재현적 내용이나 의미도 갖지 않으며 그 자신을 넘어서는 어떤 것도 지시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확실히 나의 ‘순수주의’는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순수주의 원칙과는 중요한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음악적 순수주의는 관습적으로 볼 때 음악에 가능한 그 어떤 형식에서도 정서적인 ‘의의’를 부정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음악이 미적 목적의 일부로서 다양한 일상 정서를 환기, 지칭, 묘사, 재현, 제시 또는 구현할 수 있다는 점도 부정한다. 달리 말해 순수주의는 음악의 정서적 기술이 가능함을 부정한다. 하지만 나는 물론 음악이 적어도 몇몇 경우에는 미적 구조의 일부로서 다양한 일상 정서를 제시 혹은 구현한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생각대로 MusicAlone은 의미나 지시, 재현적 특징이 없는 구조라는 점이 음악적 ‘순수주의’의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받아들여진다. 비록 내가 음악의 몇몇 특징을 표현적이라 생각하더라도 나는 음악에서의 순수주의의 진실한 정신은 설명하고 있다고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다.

… 여기에서 JS Bach 의 대위법 기술은 가능성의 기술이며 발견과 드러냄의 기술이다.

물론 이것은 특별한 경우다. 하지만 이 예의 경우를 대위법 전체로 일반화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대위법 음악을 그처럼 신비하고 매혹적으로 느끼는 것은 그것이 어떤 심층적인 면에서 음악적 소리 자체의 가능성을 우리에게 드러내기 때문인 것 같다. 바흐의 코랄 전주곡처럼 기존의 재료에서 시작하든지 아니면 스스로 주제를 만들고 그 가능성을 여러모로 생각해보든지 간에 그 과정은 그 어떤 종류의 음악보다 가능성의 발견이라고 불릴 만하다. 대위법 작곡가는 일종의 탐험가다. 그는 소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발견하고 주제가 무엇과 결합될 수 있고 어떻게 결합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드러낸다. 만약 선율이 우리에게 가장 기본적인 음악으로 보인다면 그 “본질이 선율의 본질과 확고하게 연결되어 있”는 대위법은 궁극적인 음악 예술이다. 그것은 선율 자신과의 가능한 조합이라는 방식으로 선율의 궁극적인 가능성을 극한까지 추구하기 때문이다. 선율이 음악적 우주에서 가장 간단한 완전 실체라면 대위법 작곡가는 궁극적인 ‘선율주의자’이며 음악적 우주에서 콜럼버스나 뉴턴과 같은 존재이다.